[스포츠]‘신백철의 재발견’ 셔틀콕 금빛 미래

아시안게임 8년만에 금…중국 대비 전략 해결책 제시

만리장성이 높다는 말은 스포츠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10 아시안게임이 열린 중국 광저우는 거대한 공룡을 재발견한 장소에 불과했다. 대회 기간 중 대부분의 종목에서 중국과 언제 격돌하느냐에 따라 한국의 메달 색깔이 가려지곤 했다.

11월 21일 오후 광저우 톈허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 한국-중국 경기에서 신백철-이효정이 중국 장난-자오윈레이를 상대로 강력한 스매싱 공격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아시안게임이 올림픽이나 세계선수권대회보다 ‘메달 사냥’이 쉬워 보인다. 대부분이 그렇지만 특히 배드민턴과 탁구는 유별난 종목이다. 국제대회에서는 세계 최강인 중국을 유럽 등이 가끔 잡아주기라도 하지만 아시안게임에서는 중국의 벽을 넘을 저격수가 없다면 금메달은 희망사항에 불과하다. 정면승부를 피할 방법조차 보이지 않는다.

한국 탁구는 이번에도 간극이 큰 ‘2인자’라는 좌표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은메달 1개와 동메달 4개. 2006년 도하 대회에 이어 ‘노골드’.

하지만 배드민턴은 희망을 발견했다. 11월 21일 혼합복식 결승전에 출전한 신백철(21·한국체대)-이효정(29·삼성전기)이 8년 만에 만리장성 정복에 성공했다.

배드민턴은 당초 금메달 2개, 은메달 3개, 동메달 2개가 목표였지만 어디까지나 중국을 이긴다는 전제였다. 금메달 7개 가운데 5개에 도전했지만 모두가 중국에 지면서 미끄러졌다.

‘린단 킬러’로 유명한 남자 단식의 박성환(26·국군체육부대)은 두번이나 무릎을 꿇었다. 단식 준결승에서 0-2로 패했고, 단체전 결승에서는 첫세트를 이기고도 역전패했다. 배드민턴계에서 유일하게 까다롭게 여기는 박성환을 제압한 린단은 무난하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복식은 4강에 두 팀이나 출전했지만 모두 중국에 막혔다. 이경원(30·삼성전기)-하정은(23·대교눈높이)은 왕샤오리-위양, 김민정(24·전북은행)-이효정(29·삼성전기)은 톈칭-자오윈레이에게 패해 결승 문턱에서 좌절했다. 여자 단식에서는 배연주(20·인삼공사)가 8강에서 중국의 왕신에게 0-2로 패했다.

그렇기에 신-이 듀오가 따낸 금메달은 한국의 가능성을 보여준 결과였다. 결승전에서 중국의 장난-자오윈레이에 2-0으로 승리를 거둔 것은 2002년 부산 대회에서 남자단체, 혼합복식 등 4개의 금메달을 휩쓴 이후 8년 만이다. 4년 전 도하 대회에서는 남자단체 은메달을 비롯해 동메달 5개를 땄지만 금메달은 중국의 몫이었다. 이용대(22·삼성전기)와 짝을 이뤄 2010 베이징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이효정도 아시안게임에서는 처음으로 정상에 등극했다.

신백철은 처음 출전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는 기염을 토했다. ‘백전노장’ 이효정은 긴장한 신백철이 실수를 하거나 위축된 모습을 보일 때마다 누나이자 선배로서 다독였다. 그는 안정을 찾았고 기량을 100% 발휘했다.

노장과 신예의 투혼이 빚어낸 결과였다. 배드민턴 팬들조차 생소한 듀오가 한국의 위상을 되찾은 셈이다.

‘환상 짝꿍’ 노장 이효정 대표팀 은퇴
배드민턴계에서는 이효정이 남자들을 군대에 안 보내기로 유명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이용대가 그랬듯이 신백철도 금메달을 목에 걸면서 병역혜택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하지만 신-이 듀오의 인연은 짧기만 하다. 부상을 당한 이용대가 남자 복식에 집중함에 따라 ‘베테랑’ 이효정의 새 파트너는 신백철로 낙점됐다.

11월 21일 광저우 톈허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배드민턴 혼합복식 결승 한국-중국 경기에서 신백철-이효정이 우승한 뒤 시상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중수 대표팀 감독은 “지난 3월 스위스 오픈 때 신백철의 가능성을 확인했다”면서 “신백철은 파워가 뛰어나고 이효정은 네트 앞 플레이가 노련해서 잘 맞을 것으로 봤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손발이 맞지 않아 고생했다. 싱가포르 오픈에서는 32강에서 탈락했지만 노련한 이효정이 경기를 리드하면서 신백철의 파워 스매싱이 조금씩 빛을 보기 시작했다. 듀오는 곧 이어 열린 인도네시아 오픈에서는 4강까지 진출했고, 5개월 뒤에 열린 광저우에서는 조직력을 과시하며 정상에 등극했다.

이효정은 이번 대회를 끝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한다. 이효정은 “신백철과 호흡을 맞춘 기간이 짧았음에도 우승하게 돼 기쁘다”는 소감과 함께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뛰지 않겠다. (대표팀에서) 은퇴하겠다”고 말했다.

이효정은 2002년 부산대회에서 여자 단체 은메달, 여자 복식 동메달을 땄다. 도하 대회에서도 여자 단체, 여자 복식에서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딴 뒤로는 허리, 발목 부상에 시달리며 어려움을 겪었다. 파트너였던 이용대마저 팔꿈치 부상으로 대표팀을 들락날락한 탓에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지 못하다가 이번에 화려하게 명예회복을 하게 됐다.

광저우의 영웅이 된 이효정은 대표팀을 떠나 실업팀으로 컴백한다. 그리고 중국의 저격수가 된 신백철은 새로운 파트너를 찾아야 한다. 신백철은 “모두가 효정 누나 때문”이라고 공을 돌렸다. 그는 “처음에는 천천히 하려 했으나 하나씩 이루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며 “힘들게 훈련을 했는데 노력한 만큼 성과를 이룬 것 같다”고 자신감에 차 있었다. 듀오의 승리는 ‘중국 벽’이라는 풀리지 않는 화두에 해결책을 제시했다. 남자복식 박주봉-김문수, 혼합복식 김동문-라경민 등 초대형 스타를 앞세워 중국을 제압했던 한국 셔틀콕이 신백철을 통해 재기할 실마리를 찾게 됐다.
　

공중파 생중계 외면 ‘비인기 설움’
한국의 셔틀콕이 광저우에서 힘든 사투를 벌이고 있을 때 한국의 팬들은 화끈한 응원전을 펴지 못했다. 배드민턴은 생활체육인구 1위 종목으로 최다 팬을 보유하고 있지만 방송은 비인기 종목으로 평가절하했다. ‘편식중계’는 도를 넘었다. 11월 15일 한국과 중국의 배드민턴 남자 단체 결승전의 경우 중국팬들조차 이용대의 플레이에 환호를 했지만, 한국에서는 어느 곳에서도 중계를 하지 않았다. ‘베이징 훈남’ 이용대의 출전을 보기 위해 팬들은 인터넷에 접속, 중계를 보는 방법을 찾느라고 고생했다. 네티즌들은 CCTV에서 해주는 인터넷 생중계 사이트를 퍼나르기에 바빴다.

가요무대를 마친 KBS1 TV가 배드민턴 중계를 시작한 것은 밤 11시20분쯤. 남자 대표팀이 1-3으로 패해 중국의 문턱을 넘지는 못했지만, 4시간 30분에 가깝게 투혼을 보여주는 사이 팬들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지 못했다. 아시안게임의 열기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김창영 경향신문 체육부 기자 bodang@kyunghyang.com>